Sunday, May 20, 2012

내가 번역을 하는 이유(번역 업무의 특성 소개)

나는 주로 기술 분야(소프트웨어, 제품 설명서, 웹 사이트)의 영한 번역을 한다. 내가 번역을 하게 된 처음 목적과 진행 과정을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자 한다. 이 글은 개인적인 회고로서 대상 독자는 나 자신이지만 직업적으로 번역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에게 다소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

10여 년 전, 나는 컴퓨터 정보 분석 시스템 개발(프로그래밍)을 그만 두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중국으로 어학 연수를 갔다. 1년 정도 중국어를 배운 후, 중국어를 활용하여 뭔가 일을 할 정도가 되려면 수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고 막막했다. 그 즈음, 나는 내게 상당한 영향을 준 책인 The Power Of Now를 접하게 되고, 그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그 후로 수년 간 14번 읽었다. 영어로 된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부터 배웠던 영어를 계속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한 1년 정도 영어 공부를 했을 즈음, 유학 자금이 거의 바닥나고 뭔가 일을 해야했다. 영어 공부도 계속하고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영어 책 한 권을 번역한 사람을 만나 번역 작업의 특성을 듣게 되고, 나도 영한 번역을 시도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중국 번역 회사에 프리랜서 지원을 하여, 유명 은행에서 발간한 은행 홍보용 자금 관리 안내서 번역 일을 받았다. 한국 번역 회사였으면 경력 없는 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을 안 주었을 것이다. 나는 무작정 번역을 시작하고, 금융 용어 하나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을 수 시간 동안 헤매가며, 하루에 간신히 2페이지를 번역했다(일반적인 번역사는 하루 10페이지 이상 번역하며, 그래야 한 달에 2백만원 이상 벌 수 있다). 혼자 그 책을 다 번역할 수 없었기에 다른 중국 내 영한 번역사들이 같이 참여했다. 나를 비롯하여 번역사들의 번역 품질이 전체적으로 낮아서 돈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아무튼 나도 번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중국 번역 회사에서 좀 더 쉬운 일을 한 가지 더 받아서 이번에는 큰 무리 없이 완료한 후에, 중국에서는 수입이 적으니 한국 번역 회사에서 일을 받을 방안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중국에서의 번역료는 단어 당 10원으로서, 한국의 25% 정도였다). 운 좋게, 나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형 번역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수년 간 일하며 번역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몇 년 후 나의 부정적인 기운, 열정의 쇄락, 체력 악화 등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프리랜서 번역을 하고 있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나의 영어 및 번역 실력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 처음에는 밥벌이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 나의 번역 품질을 고객으로부터 인정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에게 일하는 기쁨은 별로 없다. 애석한 일이다.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해야할 시점이 온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The Power Of Now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나의 모든 능력을 다해 집중해서 행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배웠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영한 번역은 영어를 배울 수 있고, 번역 작업별로 다양하고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으며, 하면 할수록 능력이 향상되어 더 많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완료하고 경쟁력이 나날이 향상되며, 번역 품질이 좋은 한 누구도 내 작업 방식에 관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할 수 있으며, 원하는 작업 분량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탁월한 장점들이 있는 일이다(다만 몸을 움직이는 일에 비해 체력 단련 효과는 없다는 것이 흠이긴 하다). 나는 번역에 도전했던 처음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가능한 한 깊은 수준의 집중을 하여 기쁘고 감사하게 일에 임하고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