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8, 2014

노는 여자와 순결을 지키는 여자

부제: 여성의 성적 순결주의는 과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전략인가

요즘 20대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는 것 아니었나?
일전에 아프리카TV의 인기 BJ인 쥬인 씨의 방송에서 채팅에 참가하다가 약간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나는 쥬인 씨가 예전에 남자 친구와 사귈 때 당연히 성관계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꺼냈는데, 쥬인 씨는 이성 관계에서 성관계는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했고 일부 시청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당시 나는 요즘 20대들이 아직도 혼전 순결주의를 가지고 있는가 하고 의아해했다. 사회가 점차 성적으로 자유 분방해지고 있다던데, 나보다 20년이 젊은 사람들은 내 세대에 비해 성관계를 훨씬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순결주의에 젖어 있다니...
나는 미혼의 성인이 성관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건 상 성관계를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자신이 가진 보수적인 성관념으로 인해 성관계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탄했다. 요컨대, 자유 성관계를 꺼려하도록 만드는 것은 전통적인 순결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이고, 현대 여성은 더 이상 이러한 순결주의를 받아 들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성관계를 즐겨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순결주의가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일본의 행동생태학자인 오바라 요시아키가 쓴 '이기적 본능'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 나는 성관계에 대한 내 가치관이 편협했음을 느끼고 전반적으로 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관계의 행동생태학적 의미, 즉,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해야 번식 성공도가 높아지는지, 그래서 진화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미혼이라 하더라도 성관계가 단순히 즐거운 놀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이기적 본능'에서 소개된 다양한 동물들의 번식 전략을 참고하여 현대 남녀의 연애 방식과 순결론 등의 가치관에 대해 살펴 보겠다.

명품백을 사달라고 조르면 된장녀?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선물 받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 비난한다. 그것은 연애의 댓가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성매매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창녀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데, 문제는 소위 '된장녀'는 자신도 일종의 성매매를 하면서 전문적인 창녀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선물 요구는 배우자 선택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
일부 조류의 암컷은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얼마나 큰 먹이를, 얼마나 자주 잡아다 주는지를 살펴보고 가장 우수한 수컷을 고른다. 수컷은 열심히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작은 것을 잡으면 아예 버리고 큰 것을 잡으면 암컷에게 가져다 준다. 이를테면 명품 먹이를 암컷에게 준다. 암컷은 큰 먹이를 가져다주는 수컷을 선택하는데, 이런 수컷은 번식 후 새끼를 키울 때에도 먹이를 잘 구해 올 가능성이 높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연애는 궁극적으로 결혼을 하기 위한 짝짓기 과정이므로 선물을 잘 하는 남자, 능력 있는 남자를 택하는 편이 본인이나 자식을 위해 바람직하다.

여자의 밀당: 진화생물학적으로 검증된 전략
데이트를 하면 손잡기, 키스하기, 애무하기 등, 소위 '진도'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남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바로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자는 가능한 천천히 진도를 나간다. 남자의 애를 태우면서, 남성이 얼마나 그 여성을 얻기를 원하는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일부 조류도 마찬가지로, 암컷은 금방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면 비교적 최근에 짝짓기에 성공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 암컷에게 절실하지 않은 수컷은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고 절실한 수컷이 남는다. 역시 이러한 수컷이 향후 새끼 양육에 더 도움이 된다.

처녀막은 아주 쓸모 없는 조직은 아니다
처녀막의 유용성과 의미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처녀막은 여성이 첫경험을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처녀를 선호하는 남자를 위해 처녀막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첫 성관계 시 처녀막이 파열되면 통증을 느끼게 되므로 성관계 자체를 기피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여성은 비교적 젊을 때에는 성관계로부터 크게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처녀막의 효과와 더불어 초기 성관계를 지연시킬 수 있다. 성관계를 지연시킬수록 좋은 배우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철모르는 시절에 철없는 남자와 관계를 맺어 미혼모가 되는 사태를 줄일 수 있다.

친자를 확신할 수 없는 남성의 비극
이상에서 살펴본 선물 요구, 밀당 기법, 처녀막 등은 주로 여성의 전략이다. 여성 전략의 핵심은 가족을 보호하고 자녀를 충실하게 키울 수 있는 아버지를 잘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남성은 입장이 다르다. 남성은 자신의 자식을 낳아 줄 수 있는 여성을 골라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여성이 낳은 자식이 친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은 남성에게 없다. 일부 어류 중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 종이 있다.

자식을 수십년 간 헌신적으로 키웠는데 친자가 아니었다면 진화 생물학적으로 남성 최악의 악몽이다. 진화 측면에서, 이는 완전히 인생을 헛산 것이고, 그 남성의 유전자는 대가 끊겼다. 따라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런 어리버리한 남성은 점차 도태되어 사라진다.

성적으로 너그러운 남자 대 난봉꾼
극단적인 예로서, 두 종류의 남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A라는 남자는 너무나 관대해서 부인이 성적으로 자유롭게 다른 남자를 만나도 괘념치 않으며, 자신의 자식인지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정성껏 키운다. B라는 남자는 너무나 바람기가 많아서 이 여자, 저 여자 가릴 것 없이 관계를 하며 자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자 입장에서 A는 천국이고 B는 지옥이다.

그런데 진화 생물학적으로 어떤 쪽이 살아 남는가? 양쪽의 번식 성공도를 보면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A쪽은 자식 중에 친자가 아닌 아이도 있겠지만 자식들을 성공적으로 키웠고, B쪽은 친자는 맞지만 성공적으로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이 나중에 성공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후손을 많이 남길 가능성이 A쪽에 비해 낮다. 그래도 대략 많이 싸질러 놓은 B쪽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질투는 남자의 힘
아무튼 남자는 친자를 보장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질투를 한다. 배우자가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혼외 정사를 하는지에 대해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인간 여성은 포유류 중에서 성적 활발함이 최강이다. 1년 내내 발정기이다. 거의 남성에 맞먹을 정도이다. (이 역시 여성의 전략 중 하나인데, 이 글에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기적 본능'에서 소개된 모 조사에 따르면 1981년 미국 여성 중 혼외 정사를 경험한 사람이 50% 이상이고, 아마도 일본에서 실시된 것으로 보이는 모 조사에 따르면 친자 판정 재판에서 18%가 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여성의 질투는 그 목적이 다르다
친자 보장이 남성 질투의 목적이라면, 여성은 먹을 것과 지원이 질투의 목적이다. 남성이 혼외 정사를 하건, 혼외 자식이 있건 실질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 남성이 계속 충실하게 먹을 것을 구해오고 여성을 지원하여 자식을 잘 키우면 된다. 이런 차이로 인해, 능력 있는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바라보는 순결주의
인간 성생활에 대한 진화생태학적인 측면을 살펴본 후 나는 순결주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일단 순결주의는 남성의 친자 보장을 위한 것이므로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여성만 순결해야 하고 남성은 순결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것은 남녀 차별 아닌가 하는 질문은 순결주의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친자가 보장되면 여성에게도 이득이다. 남성이 육아에 더 충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예를 보자면, 일부일처제로 번식하는 캘리포니아 밭쥐는 수컷이 육아에 충실한 반면, 난혼제로 번식하는 몬타나 밭쥐의 수컷은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다.

덧붙임말: 인간은 인간인가, 동물인가
이상한 질문이다. 물론 인간은 동물인데,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난 듯한 이성적인 측면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성적인 부분도 사실은 유전자가 안배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인가. 예를 들어, 애를 낳지 않겠다는 나는 뭔가. 내 유전자가 종족 번식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인구를 조절하여 종 전체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한 것인가.

아무튼 앞으로는 성생활 또는 남녀 평등에 대해서 단순히 자유주의 또는 이성적인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동물적인 측면에도 같이 고려해야겠다.

Tuesday, January 28, 2014

창녀 옹호론: 창녀와 정숙한 부인 중 어떤 쪽이 더러운가

한국에서 윤락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100만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심지어 해외에까지 진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그냥 현지에서 소비하는 부분이 많긴 하겠지만).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창녀를 비난하는 것일까? 창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폭력 사범이나 심지어 절도 사범과 비슷한 정도, 또는 그 이상이다. 나는 이렇게 창녀를 비난하는 사람의 심리와 근거를 살펴보고 그것의 불합리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매춘은 더러운 것인가?
창녀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것일까? 더럽기로 따지면 하수구 청소가 훨씬 더럽고, 힘들기로 따지면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일이 훨씬 힘들며, 스트레스 받는 걸로 따지면 고객 센터에서 불만 응대하는 것이 훨씬 스트레스가 크고, 댓가가 과도하게 크다는 걸로 따지면 로또 일등 당첨된 경우가 훨씬 크다(이 경우,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댓가가 적지만 당첨된 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댓가가 크다는 것이다).

내 주장의 한계
아래에서 나의 주장은 역사적, 사회적, 생물학적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주워들은 말과 나의 생각을 엮어 추론한 것이므로 일부 주장이 실제 사실과 다르거나 편협한 것일 수 있음을 먼저 밝힌다. 또한 매춘 남성과 매춘 여성을 통틀어 논의하고 싶지만 양측의 입장이 다르고, 나는 매춘 남성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매춘 여성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자유로운 성관계는 더러운 것인가: 남성 입장
창녀가 천대를 받는 이유는 우선적으로 여성의 자유로운 성관계, 소위 '난잡한' 성관계가 더럽거나 부끄러운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친 이유 중 하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핏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누군지 혼동될 일이 거의 없지만, 아버지가 누군지는 항상 불확실하다. 그런데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남성들이 그런 불확실성을 순순히 수용할 리가 없고, 그렇다고 친자 DNA 분석을 할 기술도 과거에는 없었으니, 배우자인 여성을 감시하거나 교육을 통해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강요된 정조 의식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려는 남성들의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성관계는 더러운 것인가: 여성 입장
정조 의식을 옹호한 사람은 남성만이 아니다.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구속하는 정조 의식을 옹호했다. 왜 그런가? 임신 중에 혼자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고, 출산 직후에는 더 힘들다. 그래서 남성에게 말했을 것이다. 내 뱃속에 있는 자식은 어느 누구의 자식도 아니고 네 자식이라고. 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니 내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자신의 자식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남성의 신뢰를 얻기 위해, 여성이 장기간 동안 한 남성과만 성관계를 맺는 관습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성은 이왕이면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남자를 택해 씨를 받기를 원했겠지만 임신 및 양육의 문제 때문에 좀 부실해도 자기에게 충실할 것 같은 남자를 택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약속, 즉, 결혼이라는 관습까지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조 의식은 여성의 생존 전략이자, 후손을 성공적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여성이 창녀를 더럽게 보는 이유: 귀한 고기를 순순히 빼앗길 수 없다.
당신이 여성이라고 치고, 당신에게 충실한 남성(예를 들어 남편)이 있다고 쳐 보자. 그런데 마을에 자유 성관계를 하며 댓가를 받는 여성이 있다면? 당신의 남성이 그 여성에게 놀러 가서 귀한 고기 조각을 나눠주고 왔다면? 그 창녀는 당신에게 상당한 위협 요소이다. 더구나 그 창녀가 매력적이라면? 그래서 당신의 남성이 정신을 빼앗길 지경이라면? 도저히 그 창녀를 두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제대로 된 일도 안 하며 고기를 얻어 먹는 여성이 있다니?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여 창녀를 마을 밖으로 좇아버리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창녀를 보는 시각이 나쁜 건 당연하다. 창녀가 더럽다는 생각이나 혐오감은 이런 실질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차차 발생하여 나중에 사회적인 관념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남성이 창녀를 더럽게 보는 이유: 창녀와 여자 친구를 혼동한다
이번에는 당신이 남성이라고 쳐 보자. 왼쪽 마을에는 창녀가 세 명 있고 산 넘어 오른쪽 마을에는 열 명이 있다. 왼쪽 마을에는 창녀 수가 적으므로 선택의 폭이 좁고 가격이 높다. 오른쪽은 그 반대이다. 예쁘고 매력적인 창녀가 더러 있으며 가격도 낮다. 어느 마을에서 살고 싶은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당연히 오른쪽 마을로 발길이 가는 것이 정상이고 합리적인데 굳이 왼쪽 마을로 가는 남성이 있을 것이다.

창녀에게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다. 또는 창녀와 잠시 동안 사랑을 나눴는데, 그녀가 또 다른 손님을 받기 위해 나가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질투를 느낄 수도 있다. 성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저런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창녀를 혐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창녀에게 놀러간 것은 자신의 자유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이 창녀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조 관념에 따라,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여성은 더러운 여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 더러운 여성과 성관계를 한 자신은 뭔가? 같이 더러워지는 건 아닌가? 몸을 섞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깨끗한 건가? 왜 먹던 우물에 침을 뱉지? 왜 자신이 안은 창녀를 더럽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 더러운 창녀를 안는 것인가?

다른 의문도 있다. 당신이 창녀와 사귀고 결혼하여 애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왜 창녀에게 정조 의식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인가? 종족 번식과 무관하게 단순히 쾌락을 즐겼는데 왜 그 쾌락을 제공한 여성을 비난할까? 내가 창녀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다보니 그런 남성들의 심리를 정확히는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미 말한 대로 정조 관념에 젖어 있어서, 창녀가 자신의 여자 친구도 아니고 부인도 아니지만 여전히 정조 관념을 요구하는 것 같다. 즉, 창녀와 여자 친구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것 같다.

창녀와 정숙한 부인 중 어떤 쪽이 더러운가
성행위 자체는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 종족을 보전하기 위한 행위로서, 그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성관계 시 쾌락을 느끼도록 신경계가 진화되었으며, 일부 원숭이를 비롯하여 인간은 굳이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행위 자체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양육 때문에 발생한다. 수백 개의 알을 낳은 후 모래를 덮어주고 떠나 버리는 바다거북이와 같이 자식의 양육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정조 의식이 필요 없다. 인간은 워낙 복잡한 동물이라, 그 어떤 동물보다 길고 집중적인 양육을 해야만 자식이 생존하고 자립할 수 있다. 그러한 양육을 위해 여성은 많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얻는 이점을 포기하고 한 남성과만 관계를 맺고 그 댓가로 그 남성의 장기적인 지원을 얻게 되었다(여기서 '관계'란 성관계뿐 아니라 감성적,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모두 포함한다). 소위 정조 관념이 투철한 정숙한 부인이 탄생한 것이다.

얼마나 정조 관념에 빠져 있냐하면, 성폭행을 당한 여자는 몸과 정신이 더렵혀졌으므로 자살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식이 지구 곳곳에, 가까이는 조선에도 있었고 현대 한국에도 있다(물론 조선 시대에 피해자 여성이 다 자살한 것은 아니고, 일부 자살한 여자에 대해 주변에서 그녀의 높은 정조 의식을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 출처: 조선 후기 성별에 따른 자살의 해석, http://medhist.kams.or.kr/2008/155.pdf).

애를 잘 키워보자고 정조 의식을 만들었는데, 애는 나 몰라라하고 자살을 하다니? 이런 과도한 정조 의식은 남녀 불평등이 극심한 시대에 여성을 하등하게 보는 남성의 횡포에서 기인한 것이긴 하다.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 분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그만하고, 여성 스스로도 이러한 정조 의식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 가겠다.

반면, 창녀는 한 남성과의 독점적 관계에서 얻는 이점을 포기하고 많은 남성과의 성관계를 통해 주로 물질적인 댓가를 받는 여성이다. 그렇게 얻은 재화를 가지고 노는 데 쓰던, 자식을 키우는 데 쓰던 자유다. 창녀와 정숙한 부인 중 어떤 쪽이 더러운가? 이 질문은 파란색과 빨간색 중 어떤 쪽이 더러운가 하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맺음말
내가 찾아본 바로는 창녀 비난의 근거는 창녀에게 정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근거는 웃기는 소리라는 것을 위에서 언급했다. 그것 말고 제대로 된 비난의 근거가 있을지 의문이다.